부산 영도 여행 한국해양대학교 해사대학 구경하기, 잠시 25년 전으로
한 때 제가 부산에서 일을 했었기에 출장을 가면 와이프를 데려갔습니다.
호텔은 2인이 기본이라 투숙하면서 제가 일하러 가면 와이프는 여기저기 다니며 카페를 다니고 박물관도 가고 하다 친한 지인을 2명 만나게 되고, 그 후로 저희는 일 년에 1번은 꼭 부산 여행을 갑니다. 와이프가 부산에서만 상영하는 영화를 본다 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갈 필요가 있어 마침 잘됐다 싶어 이리로 향했습니다.
한국해양대학교!
한국해양대학교는 부산 영도구에서도 끝자락에 위치해 있습니다.
태종대를 가기 직전에 있다고 봐도 되지요.
해양대학교는 국내에 부산, 목포 2군데가 있고, 그중 한국해양대학교, 해사대학이 그 뿌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벌써 24년 전이네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저는 여기서 대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해사대학관
여기가 최초 해사대학이 시작된 본관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도 하기 전에 저는 여기로 와서 전반적인 생활과 규율을 위한 적응 교육을 받았지요.
오리엔테이션이라는 것만 알고 갔다가 대단한 경험을 했습니다.
여기서 배운 제식과 제복다림질과 구두 닦는 기술이 군대에서 배운 것보다 더 정교했을 정도니 말 다했지요.
이제 지긋지긋한 수능을 마치고 좀 놀고 싶었던 저 같은 고3들에겐 혹독한 시간이었습니다.
지도관, 사관부, 생활교육부장, 뭔가 차원이 다른 ROTC, 차원이 다른 엽기적인 축제, 선데이스포츠, 태종대 구보 다양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여기 건너편에 잔디밭이 있는데 거기서 축제 때 1학년들은 누구든 모셔와서 포크댄스를 춰야 했던 문화도 있었지요.
지금 가보니 작은 나무들이 심어져 있어 이런 문화는 옛날에 사라졌단 걸 짐작했습니다. 공간도 왜 그리 좁아 보였는지,
마치 어릴 때 살던 동네를 둘러보며 담벼락이며 골목이며 다들 그렇게 작은 곳이었는가 생각하며 돌아다니는 느낌이었습니다.

해양대학교에는 해사대학만 있는게 아니라 해양과학기술대, 공대, 국제대 등 몇 개의 단대가 더 있습니다.
그래서 각 단대별로 건물들이 따로 존재하죠.
물론 여길 다니지 않은 사람들과 공감대를 이룰 수 없지만 저만의 여행을 즐겼습니다.
아이들이 여기 어디냐 물어도 그냥 혼자 조용히 있었습니다.

예전에 축제할 때 여기 무대 설치해서 무술대회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경악할만한 일이네요.
체급도 종목도 구분 없이 그냥 매치를 해서 한쪽만 무참히 공격당하는 일도 보곤 했는데 말이죠.
마라톤 대회도 해서 태종대까지 뛰어갔다 오는 대회였는데 어이없게도 제 동기 1학년이 우승을 했었죠ㅎ
축제까지 나열하면 오늘 페이지가 오버될 거 같아 생략하겠습니다만,
정말 상상도 못 할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는 사실 2학년을 시작하면서 자퇴했었고 일반대학교를 진학했기에 이 축제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웠지만 재미있었고 기억에 남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나고 나서 이 축제가 그립더군요.
이렇게 마음껏 질러보는 기분이랄까? 오직 여기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생각합니다.

저기 보이는 저 건물 강의실에서 제 생전 첫 토익 모의고사를 봤습니다.
점수는 345점 ㅎㅎㅎ
그때는 700 넘으면 진짜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봐주던 시절이었습니다.
참고로 저희 졸업 필수 점수는 500점이었죠.

해양대답게 해양스포츠 기구들이 있네요.
동아리 자원인듯합니다.
멀리 보이는 배가 해사대학생들이 3학년 때 이용하는 실습선입니다.
2척이 있는데 아직도 2척이 있네요.
배가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니 그럴 만도 합니다.
한나라, 한바다 호 두 척이 있었는데 한바다호가 그나마 새 배였습니다.
이젠 뭐 둘 다 너무 오래돼서 누가 더 오래됐다고 하기도 좀 그렇네요.

저희가 아침에 구보를 하기 위해 새벽 6시에 집합하던 연병장이 잡초들이 너무 많이 자라 이제 쓰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습니다.
해사대학의 분위기도 많이 바뀌고 문화도 많이 달라졌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벼나 별일이 다 있었는데 말이죠.
벌써 25년이 다되어가니 아기 한 명이 성인이 되는 시간이 짧은 시간도 아니지요.

한바다호!
오랜만에 보니 멋있었습니다.
하필이면 1학년 겨울 실습이 시작되는 그날, 바로 이 앞에서 자퇴를 하겠다고 선언해서 과의 모든 동기들을 충격에 빠뜨렸죠.
너무 돌발 선언인가요? 1년을 넘게 같이 살아온 제 룸메이트는 허망해서 1년 휴학까지 했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제가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부터 점집을 자주 다녔습니다.
늘 그런 곳에서 한해의 소식을 들으셨는데 제가 입학하고 나서였습니다.
제가 여길 다니면 해기사를 해야 하고 그러면 큰 사고를 당한다고 들으셨죠.
어머니께서 계속 걱정하시고 사람이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히면 계속 그것만 떠올리고 때로는 현실이 되기도 하니 저도 큰 반대 없이 자퇴했습니다.
사실 저는 큰 상관없었습니다. 어딜 가도 잘 해낼 자신이 있었을 정도로 젊은 나이였으니까요.
해양대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잘 지내고 있었는데 닦아놓은 기반이 아깝긴 했지만 가족이 가장 중요하긴 하지요.
그러고 보니 점집이나 무당을 만나면
내가 육군사관학교에 가니 마니, 크면 성공하니 여러 가지 들었는데 딱 하나 모든 곳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바로 ‘중년부터 아주 잘살고 점점 잘돼서 나중에 크게 성공하는 아이다’라는 말.
저는 이게 싫었습니다. 왜냐하면 젊어서 돈도 많고 벌고 잘 사는 게 좋았으니까요.
살아오면서 저 말이 두고두고 떠올라 싫었는데
중년이 되고 나서 보니 이게 얼마나 강력한 건지 이제 알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내가 무려 30여 년을 외우던 주문이었다는 걸 말이죠.
살아오면서 30년 넘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무언가가 있나요?
어쩌면 이건 30년 동안 기도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왜냐고요? 제가 그렇게 믿었으니까요. 그게 싫었다는 건 그렇게 믿었으니깐 그런 거였다고 생각합니다.
거짓말처럼 중년이 되니 좋은 회사로 옮겼고 가정도 안정되었고, 식구들 모두 풍족하게 맛있는 것도 원없이 먹고 지내고 있습니다.
정신 차려보니 이제 시간을 거꾸로 갈 수도 없고 남은 건 좋은 것뿐. 중년 다음이 청년은 아니니까요 : )


혼자 즐거운 여행을 했습니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다면 가끔 그런 곳에 찾아가 지금의 모습은 어떤지 구경하는 것도 아주 재미있는 여행입니다.


실컷 놀았는데 주차비를 천원만 받네요.
혼자만 놀면 미안하니 아이들에게 태종대 열차도 태워줬습니다.
날짜를 잘못 골랐는지 너무너무 더웠습니다...
그래도 태종대는 가볼 만하지요! ㅎ
제가 학교 다닐 땐 토요일마다 비만 안 오면 태종대 구보를 했습니다.
물론 정상에서는 좀 걸어오고 오리걸음으로 혼나면서 오기도 했지만요...
1년이 52주 정도 되니 주말 빼고 비 오는 날 빼고 방학 빼고 한 30번은 가본 듯합니다.
안녕. 한국해양대학교.
또 만나자.
